아침에 좀 늦게 일어나서 샤워하고 바로 책상에 앉습니다. 작업을 시작하죠.
그러다 보면 정오를 넘어 오후 두세 시가 되고, 배가 고프니 첫 끼니를 해결합니다.
아주 귀찮을 때만 아니면 늘 요리를 직접 하니 식사까지 한 시간? 그 정도가 걸립니다.
뭔가 먹고 나면 찝찝해서 못 견디기 때문에 또 샤워합니다.
몸을 닦고, 머리를 말리고, 또 책상에 앉습니다. 작업을 재개하죠.
그럼 자정을 두어 시간 앞두게 되는데,
위장에서 소리를 지르니 다시 식사 준비를 하러 일어납니다.
역시 또 한 시간 쯤 저녁을 먹는 데 할애하고요. 직후에 샤워는 필수예요.
자정을 넘기면 졸린 눈을 비비며 작업합니다. 슬슬 피로가 몰려 와요.
더 못 견딜 것 같을 때까지 버티다가 자려고 눕습니다. 왠지 끈적해요.
샤워하러 갑니다. 끝나면 드디어 이불을 덮고 베개 위에 머리를 얹고 잠에 듭니다.
이게 보통의 일상인데, 한 편에 한 번씩 3D 배경 작업을 몰아서 해야 할 때가 있어요.
오늘이 바로 그런 때예요. 프로그램은 작업 표시줄에 숨어서 저 대신 배경을 그려 주고 있죠.
화면 보다가 그래픽 카드 팬 돌아가는 소리 꺼지면 다시 클릭하는 게 다죠.
이전에 작업하며 만들어 둔 배경이고 구도도 이미 설정해 둬서 손을 따로 댈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 대충 방 여기저기 훑어 보다가, 청소 안 된 곳 있으면 쓸고, 닦고,
빨래 돌릴 건 없는지 뒤적대고, 고양이 화장실 어떤가 확인하고,
설거지 밀린 거 있으면 세제 묻혀서 슥슥 문지르다가,
다시 방에 돌아와서 화면 보고, 다 된 것 같으면 새 파일 열어서 렌더 버튼 눌러 놔요.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멍하게 앉아 있어요. 지금처럼요.
렌더 중에도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가능하면 컴퓨터를 힘들게 하고 싶진 않아서요.
이젠 기술이 좋아선지 문제 없이 잘 쓰고 있지만, 제가 첨 일을 시작하던,
그러니까 한 2005년 무렵엔 심심하면 컴퓨터가 망가졌단 말이죠.
이게 망가지면 모든 게 끝이에요. 그래서 소중히 여기고 있어요.
그러려니 한가하네요. 아무 일도 없이 평화롭고 좋네요.
예전엔, 적어도 작년까진 여유가 넘쳤어요. 이렇게 빡센 작업은 잘 안 맡았거든요?
남는 시간엔 스쿼시도 하고, 피트니스 센터도 가고,
거실에서 고양이들이랑 늘어져서 낮잠도 자고 그랬죠.
휴식, 여가가 인생의 낭비는 아녜요. 제가 <나비 효과>를 그리면서,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17살에 몸이 아파서 학교를 관둔 뒤로,
계속 놀기만 했기 때문이거든요? 잡스런 생각을 매일 했어요.
그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됐어요.
하지만 계속 여유만 부리다간 발전이 없을 것 같아서 말예요.
아이디어만 갖고 만화를 그리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 글 작가란 직업도 있긴 하지만요.
저 역시 글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알려 지진 않았지만.
어쨌든 최종적으론 만화가가 되고 싶은 거고, 그러려면 그림도 수련을 해야 해요.
근데 얘는 손을 움직이지 않으면 전혀 발전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최근엔 작가들의 실력이 다 늘었어요. 옛날 같지 않아요.
뒤처질 때 조바심만 내는 사람들은 조만간에 뒤처졌단 느낌도 받지 않아요.
남들이 너무나 멀리 가 버려서 내가 늦는단 것도 모르는 거죠.
일단 달려 봐야 할 것 같아서 남들 뒤라도 쫓고 있어요.
힘에 부치지만, 한 해, 두 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옛날에 만화를 첨 그릴 적에 선배 한 분께서 그러셨어요.
"하드 트레이닝을 해야 해!"라고요. 그게 맞아요. 12년 전에 들었는데,
아직도 그게 제겐 변치 않는 진리예요.
이렇게 긴 글을 적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렌더링은 한참 남았네요.
여름도 곧 올 것 같으니 이불이나 꺼내서 빨아 봐야겠어요. 담에 만나요.
생각해 보니 빨래란 것도 버튼 누르고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안 들릴 때까지 멍하게 있는 거였어요. 아, 밤이라서 어차피 그럴 수도 없겠어요. 뭘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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