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할말이 있을 때만 글을 남긴단 생각을 갖고 있으니, 이랬다간 영원히 에센티닷넷에 내가 글을 안 쓸지도 모른단 위기감이 들어서, 일기라도 적어 볼까 해요. 아, 오늘의 일기를 적기엔 정오도 안 된 시점이라서, 딱히 기록할 게 없어요. 어제의 얘기를 해 볼까요?
어제는 성서까지 갔습니다. 여기서 성서란 건, 대구 사람이 아니면 어딘지 잘 모르겠죠? 저랑 비슷하거나, 제 윗 세대라면 일명 '개구리 소년'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제가 국민학생 시절, 즉 초등학교란 말이 생기기도 전인 먼 옛날에, 아마 어떤 선거일이었던 건지 평일임에도 학교에 안 가도 되던 날에, 다섯 명의 성서국민학교 학생이, 학교의 뒤에 위치한 와룡산에서 사라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마 건국 이후 가장 유명한 실종 사건이 아닐까 해요, 11년이 지난 2002년에 유골을 발견해서 현재는 실종이라 부르지 않게 됐지만.
1991년에 저도 성서국민학교 학생이었습니다. 충격적이었어요. 매일 교문 앞에 방송국 차가 와 있을 정도로 일이 컸습니다. 반 친구들 중에 우는 애들도 꽤 있었어요. 저도 아이들을 꽤 걱정했지만, 안면이 있는 친구는 없어선지 눈물은 흘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후부터 현재까지 27년 동안 계속 머리 어딘가에 이 사건이 박혀 있어요. 그래서 <나만이 없는 거리>라던지 <그것>, <시그널> 같은, 초등학생이 피해자인 이야기를 감상할 때면, 이상하게도 회한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솔직히 9살짜리가 당시에 어떤 활약을 하더라도 수사의 방향을 바꿀 순 없었을 텐데, 내가 뭔가 다른 선택을 한다면 다른 결말에 도달했을 거란 아쉬움을 갖고 있는 거예요.
어쨌든 어제는 아는 분들의 결혼식이라 성서까지 갔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 지인은 아니고요, 집사람의 친구예요. 집사람 덕에 몇 번 만난 적이 있어서, 아마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장 먼 곳까지 이동했어요. 지하철 역에서 나와 예식장이 있는 호텔까지 걷는데, 오르막이더군요. 옛날 기억을 떠올리면 여기는 와룡산의 초입인데, 현재는 길이 돼 있단 생각에 좀 색다른 감회를 느꼈습니다. 지금은 용산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2002년까지 11년 동안 묻혀 있던 다섯 아이들도 떠올랐고요. 성서 얘기만 하면 자꾸 얘기가 여기로 흘러 가네요.
결혼식을 잘 보고, 뷔페를 즐기고 돌아왔습니다. 예전에 제 가장 친한 친구가 결혼할 때 맛집을 기준으로 예식장을 정했는데, 당시에 그 친구가 말했어요. 어차피 아주 친해서 진심으로 축복하러 가는 인원은 극소수 뿐이기 때문에, 맛으로 승부를 보는 쪽이 먼 곳 찾아서 축의금 내고 돌아가시는 분들에 대한 보답이라고요. 오, 좋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의미를 받아들여, 보답으로 많이 먹었고요. 집에 오니 워낙에 배가 불러서 일도 하기 싫더라고요. 누워서 빈둥대다가, 당장엔 졸리지 않아서 <퍼즐 앤 드래곤>을 두어 시간 붙잡고 있으니 오늘이 됐습니다. 응? 그러고 보니 어제는 한 끼만 먹었어요, 한번에 크게 먹어선가 봐요.
음? 끝입니다. 오늘 일기의 결말이라던지 교훈 같은 걸 써야 글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게 사람들이 글쓰기에서 멀어지는 원인인 것 같아요. 후후, 그냥 여기서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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